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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년 봄에 식 올리기로 하고 지난달부터 준비 시작했어요. 남친이 정리 잘하는 편이라 예산은 자기가 시트로 만들겠다고 했고 저는 좋다고 했어요. 저도 경리라 표 만드는 거 좋아하거든요.
일주일 뒤에 공유해준 시트를 봤는데요. 항목별로 예상금액, 실제금액, 부담 주체까지 다 나뉘어 있었어요. 여기까지는 진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.
문제는 맨 아래 '자금 조달' 탭이었어요.
신랑 측 : 청약저축 3,200 / 부모 지원 5,000
신부 측 : 예금 1,800 / 부모 지원 2,000 / 마이너스통장 한도 3,000
제 마통이에요. 작년에 이직 준비할 때 혹시 몰라서 만들어둔 거고 한 번도 안 썼어요. 남친한테 그냥 지나가는 말로 "나 마통 있어서 급하면 쓸 수 있어" 했던 게 다예요. 그게 조달 계획에 숫자로 들어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.
이거 뭐냐고 물어봤어요. "가용 자원 다 적어놓은 거지. 안 쓰면 되잖아" 라고 해요. 자기도 마통 있는데 자기 건 왜 안 적었냐니까 "내 건 한도가 작아서" 랍니다. 확인해보니까 1,500이더라구요. 작으면 작은 대로 적으면 되잖아요.
그리고 총액을 맞춰보면요. 제 마통 3,000을 빼면 신부 측이 3,800이고 신랑 측이 8,200이에요. 마통을 넣으면 6,800 대 8,200이 돼요. 그러니까 그 칸이 있어야 "그래도 얼추 비슷하네"가 되는 구조인 거예요. 저는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.
남친 나쁜 애 아니에요. 데이트 비용도 자기가 더 많이 냈고 제가 회사에서 힘들다고 하면 새벽에도 전화 받아줘요. 이번 일도 저를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표 채우는 습관이라고 생각해요.
근데 시트를 다시 열 때마다 그 칸이 보여요. 결혼도 안 했는데 제 빚 낼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는 거잖아요.
엄마한테는 말 안 했어요. 말하면 결혼 접자고 하실 거 같아서요.
추가) 남친이 그 칸 지웠어요. 지우고 나서 "이제 됐지?" 하는데 그 말이 더 이상하게 들렸어요.
판 결 문
주문. 피신청인인 남친에 대해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음을 인정하여 무죄를 선고한다. 이유. 피신청인은 가용 자원을 모두 파악하려 했을 뿐 신청인에게 일방적으로 채무를 떠넘기려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. 국민 50명 중 60% 역시 정리 과정에서의 단순한 과욕으로 보고 무죄로 평결하였습니다. 특히 본인의 1,500만 원 한도 통장은 제외하고 신청인의 한도만을 기재하여 불안감을 안긴 점은 경솔했으나, 평소 신청인을 성실히 배려해 온 사정을 참작합니다. 다만 결혼은 서류상의 숫자를 억지로 맞추는 작업이 아니므로 마이너스통장 항목은 즉시 삭제하고 서로의 형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시기 바랍니다.
2026. 9. 6.
부장판사신중한 방청객518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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