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퇴직한 지 6년 된 전직 교장입니다. 이번 달에 40평 아파트에서 24평으로 옮겼습니다. 아내 무릎이 안 좋아 엘리베이터 있는 단지로 가야 했습니다.
이사 준비를 큰아들이 맡았습니다. 저는 그 주에 지방 문상이 있어서 사흘 집을 비웠고,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"책은 네가 알아서 좀 줄여라. 새 집 서재가 작다" 했습니다. 이 말은 제가 한 것이 맞습니다.
돌아와 보니 책장 여섯 개 중 다섯 개가 비어 있었습니다. 1,200권 남짓을 동네 헌책방에 넘겼다고 합니다. 받은 돈 42만원은 봉투에 넣어 제 책상에 두었더군요. 남은 건 한 칸 반입니다. 아들 기준으로 '아버지가 자주 보시는 것' 그리고 '값나가 보이는 것'이랍니다.
넘어간 것 중에는 제가 1987년 첫 담임 때부터 모은 교육 잡지 묶음, 돌아가신 은사님이 주신 친필 서명본 몇 권, 아내와 연애할 때 주고받은 시집도 있었습니다. 시집 앞장에는 아내 글씨가 있습니다.
다음 날 헌책방에 찾아갔더니 이미 상당수가 온라인으로 팔렸다고 합니다. 남은 것 중 열네 권을 다시 사 왔습니다. 6만 8천원이 들었습니다.
아들은 이럽니다.
"아버지가 알아서 줄이라고 하셨잖아요. 요즘 웬만한 책은 전자책으로 다 있어요. 이삿짐 센터가 책 상자 하나에 얼마 더 받는지 아세요? 제가 사흘 밤을 새서 정리한 거예요"
고생한 것은 압니다. 며느리도 아이 맡기고 와서 같이 묶었다고 하더군요.
그래도 '줄이라'는 말이 '열에 하나만 남기라'는 뜻은 아니었습니다. 최소한 넘기기 전에 전화 한 통은 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. 사진 몇 장만 보냈어도 골라 줬을 겁니다.
아내는 아들 고생했다고 그만하라고 합니다. 제가 늙어서 물건에 집착하는 것인지, 아들이 지나쳤던 것인지 판단을 부탁드립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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